교양교육연구소 > 후마동영상 > 프레드 달마이어 교수 '유교와 세계문명'

‘다양한 문화들의 조화’라는 구상idea을 부각시키고 공고히 하고자 모색하는 제2회 니산 세계 문명 포럼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구상으로, 저 역시 오랫동안 여기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저는 지난 세기 말에 이란 대통령 모하메드 카타미(1997년부터 2005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역주)가 주창한 “문명 간의 대화”라는 모토를 크게 환영했습니다. 유엔 총회는 이 모토를 채택하여 2001년을 ‘문명 간 대화의 해’로 지정하기도 했었죠. 이듬해인 2002년에 저는 『문명 간의 대화: 예시적 목소리들』(Dialogue among Civilizations: Some Exemplary Voices)이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세계 대중 포럼―문명 간의 대화>라고 하는 국제 민간단체에 가입하였으며 지금까지 계속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그 단체의 공동 의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문명의 대화’라는 구상이 중국에서, 특히 공교롭게도 유엔 “대화의 해” 10주년이기도 한 2011년에 창립총회를 연 니산 포럼에서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쁩니다. 게다가 니산 포럼의 개최지가 공자의 탄생지 근처라는 사실을 알고 더욱더 기뻤습니다. 세계 문명 포럼을 위한 장소로 이보다 더 적합한 곳은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 생각에 공자는 문명화의 의미를 완벽하게 구현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곡부(Qufu, 공자가 태어난 곳―역주)의 현자를 향한 저의 오랜 관심과 애정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제가 처음 중국을 방문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1991년이었습니다. “21세기와 중국 전통 사상과 문화”란 주제로 난징 대학에서 열린 국제 학술회의 때문이었죠. 그 학술회의의 중심 논지는 무자비한 전 지구적 서구화와 근대화에 직면한 중국 고유 전통의 적절성과 생존 능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전통 내에서 유교는 분명 가장 각광받는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난징 대학은 친절하게도 저에게 안내인을 붙여주었고, 안내인은 학술회의가 끝난 후에 저를 곡부와 신성한 산인 태산(Taishan, 산둥성 중부에 있으며 중국 5대 명산 중에서도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는 곳으로 역대 여러 제왕들이 이곳에서 봉선 의식을 거행했음―역주)까지 데리고 가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유교 전통에 대한 제 관심의 뿌리는 꽤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중국학 전문가도 아니고 그렇게 주장할 수도 없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문화들 간의 관계가 항상 우호적이고 환영을 받거나 대화적인 것은 아닙니다. 대화를 아예 포기해버리는 가장 주된 사례는 의도적인 비-관계nonrelation, 즉 문화적 접촉의 회피라고 하는 극단적 경우입니다. 여러 가지 동기들―두려움에 찬 불안감에서부터 오만한 자존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로 인해서, 어떤 문화는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피하고 고유한 문화유산과 전통의 함양에만 온 힘을 쏟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식의 회피를 ‘고립주의isolationism’라고 부르지요. 이때 회피하는 바깥세상이 반드시 위협적인 것(물론 대개 그런 경향이 강하지만)만은 아니며, 그저 부적절하거나 하찮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바깥세상은 동등한 인류 형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외부인을 지시하는 명칭은 ‘외국인’같이 중립적인 표현에서부터 ‘이교도’, ‘야만인’, ‘오랑캐’처럼 대놓고 경멸하는 호칭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고립주의에는 이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접촉을 회피하는 문화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큰 이점은 해롭고 파괴적인 영향력, 특히 고유한 생활 방식을 해칠 것 같은 영향력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이런 보호주의는 외래 문물이 범람할 위험성이 있는 신생 사회나 허약한 사회의 경우에 특히 중요하고 심지어 현명한 조처이기도 합니다. 반면 고립주의 정책의 단점은 문화적 정체 혹은 화석화의 위험성이며, 사회 운영의 점진적인 관례화로 인해 혁신이나 문화 개혁의 모든 추진력이 질식당해버릴 위험성입니다. 이런 식의 고립주의가 중국 청조 때에 강력하게 시행되었는데, 그 결과 과학과 경제의 정체(이것은 중국이 불평등 조약이나 다른 여러 가지 외세의 지배에 맞서지 못한 원인이 되었습니다)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었죠. 반면 미국은 19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또 다른 이유에서 고립주의를 실행했지만, 그렇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날로 팽창하는 신생 국가의 내적 역동성이 정체를 막아주는 마지막 수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독단주의적 고착의 경향이 (이민자들을 겨냥한) ‘노우 낫씽Know Nothing’ 운동(1950년대 미국에서 이민자들 특히 가톨릭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정치운동, 미국 태생의 시민만으로 정권을 잡으려던 비밀조직의 정치 단체인 순아메리카 당이 주도하였음―역주)이나 여러 가지 자기고립의 방식으로 분명히 드러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문화 혹은 문명들 간의 비-관계, (더 낫게는) 불완전한 관계의 또 다른 유형은 일방주의unilateralism입니다. 즉, 한 문화가 다른 문화에 사고와 관행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때때로 이런 주입과 이전은 단지 부분적으로만 일어나기도 하고, 전략적인 의도보다는 문화적 전염이나 침투로 의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종종 ‘서구화’라고 불리는 현상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화적 상징과 기호, 애호가 전파되는 거의 무의식적 과정인 것입니다. 이런 전파가 군사력과 행정력에 의해 뒷받침될 때, 우리는 그것을 ‘제국주의’ 혹은 ‘식민주의’(혹은 오늘날 더 널리 사용되는 완곡한 표현으로는 정치 문화적 헤게모니)라고 부릅니다. 제국주의적 혹은 헤게모니 정책의 추구는 강대국과 거대 문명에 지속적인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강대국이 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중소국가들(가령 ‘더 위대한 독일’이나 ‘더 강력한 세르비아’, 혹은 ‘더 위대한 이런저런 국가들’처럼)에서도 이런 야심이 표면에 드러날 수 있습니다. 이 정책의 이점은 지정학적 세력과 광대한 영토, 자원의 획득입니다. 반면 단점은 일방주의가 지닌 고유의 결함으로, 타자로부터 배울 수 있는 능력의 쇠퇴이며 그 결과에 따른 자폐적 자기고립(이런 점에서 제국주의는 고립주의와 유사성을 띱니다)의 위험성입니다.

역사가 가르쳐주듯이, 제국주의/식민주의는 고대 마케도니아와 로마 제국에서부터 근대 영국과 프랑스 제국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명의 지속적인 동반자 혹은 부산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보다 소규모로는, 서구 바깥에서도 제국주의자들의 모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이슬람 문화와 동아시아의 국가들(특히 일본)의 경우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중국은 분명히 거대한 문명임에도, 역사상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제국주의에 이끌린 적이 없었습니다(물론 중국의 문화적 전염력은 아시아 대부분에 확실한 영향을 미쳤지만 말이죠). 여기서 우리는 제국주의에 대한 서로 다른 성향들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문화 역사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중국은 전통적으로 중화제국 안에서 어떤 완전성과 충만함을 발견해왔습니다. 그와 반대로 서구 문명에는 언제나 결핍감과 종종 출몰하는 무질서가 특징적으로 나타났으며, 그것은 서구 안에서나 밖에서나, 이 세계에 정치적 질서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욕망의 원동력이 되어왔습니다.

이 추측이 옳든지 그르든지 간에, 어쨌든 우리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즉, 일방주의(다시 말해서 한 문명이 다른 문명에, 위에서 아래로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를 통해서는 온전함이나 총체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결론을 통해서 저는 문화 혹은 문명들 간의 만남에 있어서 가장 유망하고 유익한 방식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문명들 간의 (혹은 문명들 사이에서) 대화의 방식입니다. 이 방식 안에서 문화들은 서로 경멸하거나 회피하지 않으며, 한 가지 삶의 방식을 다른 문화에게 강요하려고 (문화적/정치적 제국주의가 그러하듯이)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 문화들은 대화와 상호 간의 시험과 건설적인 비판적 질문을 통하여 촉진된 배움의 경험에 기꺼이 동참할 것입니다. 질문이 오가는 중에는, 어떤 완전함이나 총체성을 미리 가정하거나 일방적으로 날조할 수 없습니다. 대신 총체성은 오직 상호 간의 활발한 설전을 통해 시험적으로 예기되는, 끝없는 진행 과정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총체성은 판에 박힌 몇 마디 문구로 정리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상상력이 넘치는 창조적 재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역동적 향연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식의 창조적 만남이 비교적 드문 것은 사실이지만, 아예 선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기원후 초기 몇 세기 동안, 기독교 신학자들과 그리스 로마의 지적 문화적 전통 사이에서는 부단한 배움의 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세기 후에, 이 과정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스 로마 학파들 간의 3자 대화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또한 거의 천 년 전에는 극동에서, 불교와 도교, 그리고 유교적 전통 간의 유익하고 문화적인 교류가 행해졌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그런 교류가 얼마나 빈번하게 이루어졌던지 간에, 급속한 세계화의 시대인 오늘날, 대화적 연대는 그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거의 강제적인 의무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지배나 ‘문명의 충돌’ 상태로 떨어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말입니다.

만약 문화적 만남의 이상적 형태가 제가 위에서 묘사한 그런 것이라면, 이 사실이 유교와 오늘날 유교 전통의 전문 연구가들에게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특별히 중국의 유학자들이 저의 논의에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 때때로 유학자들은 앞에 서술한 여러 가지 선택들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각자 선호하는 유교의 정의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만 출신 학자, 리우 슈지엔Liu Shuxian(劉述先, 유술선)은 유교의 세 가지 갈래 혹은 변형을 이렇게 구별하고 있습니다. 바로 정신적 혹은 철학적 유교, 공적인 혹은 ‘정치화된’ 유교, 그리고 대중 혹은 풀뿌리 신앙으로서의 유교입니다. 그보다 앞서 이미 본토 철학자인 리앙 슈밍Lian Shuming(梁漱溟, 양수명)은 ‘정신적’ 혹은 철학적 유교와 공적 혹은 ‘제도적’ 유교(특히 현세의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는 점에서)를 분명히 구별했습니다. 분명히 공적 혹은 제도적 변형에 강조점을 둔다면, 유교는 기본적으로 외부 세계에 대한 별로 의미 없는 중국 고유의 시각일 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교의 가르침은 주로 제국 통치의 부속물이며 중국인, 특히 한족 정체성의 구성 요소일 뿐입니다. 리우 슈지엔의 말을 빌리자면, 공적인 혹은 정치화된 유교는 ‘왕조의 공식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현대 중국에서 정치화된 유교는 (분명히 신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의 그늘 아래 빛을 잃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몇몇 저명한 사상가들은 유교적 유산이야말로 중국의 정치적 쇄신을 위한 이상적 수단이며 사악한 서구의 영향력에 맞서는 보루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가령 전통문화의 가치를 옹호하는 지앙 칭Jiang Qing(江靑, 강청)은 근대화, 서구화, 그리고 세계화(합세하여 중국적인 것 혹은 중국인 정체성의 기반을 침식해 들어오는 세 가지 경향)의 맹습을 몹시 걱정합니다. 그리고 이런 위험에 맞서는 안티테제로써, 유교의 정치적 혹은 공적 차원을 강조하는 것이 오늘날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정치적 유교는 한대漢代의 공양춘추학公羊春秋學에 의해 처음 발전되었습니다. 오직 이 유교의 공적 갈래(도덕의 경시를 수반하지 않는)를 되살려야만, 궁극적으로 이기주의에 뿌리박고 있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근대성의 잠식을 막아낼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합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근대성이란 구실 하에 인간은 점차 욕망에 가득 찬 동물이 되어가고 있다… 근대성에 반대되는 것으로써 전통에 대한 나의 이해는, 인간의 욕망은 반드시 천리天理에 의해 다스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차원에서 이기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사회적 다윈주의의 한 형태로 바뀌어 놓았으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류를 멸망시키고 말 것이다.” 반대로 “유교는 현명한 왕의 재출현에 인류 구원의 마지막 내기를 걸고 있다.”

구원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지앙은 유교에도 분명히 종교적 속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 사실은 그의 발언에서도 명백히 드러납니다. “유교Confucian religion의 부흥은 중국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운명 혹은 중국적인 것을 되살릴 수 있다.” 이런 견해는 심지어 사회학자이며 사회 이론가인 강 씨아오구앙Kang Xiaoguang(康曉光, 강효광)에 의해 더욱 강력히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혹은 정치화된 유교와 종교를 결합시켜서 공적 혹은 시민적 종교의 역할로까지 승격시키고 있습니다. 지앙과 더불어, 강은 서구의 근대성과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합니다. 그리고 주로 중국 민족주의와 문화 회복에 힘을 쏟고 있는데, 그의 견해로는, 이것을 위해서 중국을 재유교화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민 종교로 탈바꿈한 유교는, 요즘 시대에 심각하게 훼손되었거나 잃어버린 실질적인 합법성을 중국 정부에 제공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탁월한 유학자들이 지배하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자비로운 정부’ 혹은 자비로운 권위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오직 유학자들만이 ‘하늘의 뜻’을 알기 때문에 올바르게 통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재유교화 기획은 단지 학문적이거나 순전히 학자적인 노력(소위 신유가New Confucians에서 생각하듯이)이 아닙니다. 강의 말에 따르면, 이 기획은 동시에 두 개의 안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공산당을 유교화하는 것과 중국 사회를 유교화하는 것입니다. 유교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신하여 국가 이데올로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유학자들이 공산당 간부를 대신할 때, 자비로운 정부의 창조 과정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강 씨아오구앙의 경우에 있어서는, 유교화 기획이 단지 두 가지 안건에만 그치지 않고, 보다 야심 찬 세 번째 목표를 포함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바로 중국의 전통적 이미지로 전 세계를 변모시키겠다는 포교적인 목표입니다. 우주적 합일 혹은 조화라는 오랜 중국의 이상에 부응하여, 강은 궁극적으로는 유교의 비호 하에 세계 통합에 도달하는 일종의 ‘이상적’ 세계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고유한 전통의 함양이 여기서는 국제적 확장으로 변색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앞서 서술한 용어로 말하자면, 고립주의가 제국주의적 헤게모니라는 함의를 띄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민족주의자의 안건이 오늘날 중국에서 얼마나 호소력을 얻고 있는지 모릅니다만, 제 느낌으로는 꽤 제한적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유학자들(혹은 신유가 전문가들)의 대부분은 이 주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유한 전통의 함양과 서구 근대로부터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에 대한 개방을 결합한, 보다 균형 잡히고 변증법적인 접근 방식을 선호합니다. 이런 시각을 보여주는 두드러진 사례는 1958년에 동아시아의 선도적인 유교학자 네 명, 탕 주니Tang Junyi(唐君毅, 당군의), 장 준메이Zhang Junmai(張君勱, 장군매), 모우 종산Mou Zongsan(牟宗三, 모종삼), 쑤 푸구안Xu Fuguan(徐復觀, 서복관)이 서명한, 그 유명한 “중국학의 재평가와 중국 문화의 재건을 위한 성명서Manifesto for a Reappraisal of Sinology and Reconstruction”입니다.

이 성명서는 분명히 ‘재평가’와 ‘재건’이라는 두 용어를 통해 드러나는, 이중의 목표를 담고 있습니다. 이 성명서의 저자들은 서구의 중국학 학자들이 근대 서구의 합리성이라는 성채 위에서 중국의 전통을 내려다보며 ‘오리엔탈리스트’의 오만한 자세를 취하는 경향을 비판하는 한편, 유학자들에게는 서구의 흐름과 시각(물론 비판적으로 검토된)을 잘 수용하여 전통적 가르침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재건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 성명서의 수용력은 분명히 정치적 영역에까지 미쳐서, 필자들은 근대 민주주의의 중심 사상과 유교의 능력주의meritocracy 간의 조화―상호 교정과 더불어―를 도모했습니다. 한 마디로, 이 성명서는 전 세계―서양이든 동양이든―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모든 문화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숙고하고 가장 좋은 것을 계속 지키고 유지하라고 강력히 주장했던 것입니다. 전 세계적인 배움의 정신은 이들의 저작, 특히 탕 주니와 모우 종산의 저작을 통해 예증되고 지속되었습니다. 비록 이들은 해외에 나가 공부하지 않았지만, 중국 철학과 서양 철학 모두에 정통했으며 진정으로 비교적인 혹은 전 세계적인 연구를 하는 대가들이었습니다. 탕의 저서, 『중국 문화의 정신적 가치』는 플라톤과 헤겔 양자에게서 가져온 통찰력으로 한층 풍요로워진 중국철학 전통의 혁신적인 재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모우 종산은 불교와 유교 가르침의 면밀한 병치와 칸트 혹은 준-선험논증을 바탕으로 한 유교의 혁신적 재해석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1958년 성명서는 우리의 세계화 시대에 유교 사상과 실천이 나아가야 할 실현 가능하고도 전도유망한 길을 제시해주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성명서는 유교가 배타주의적인 중국의 정체성을 위해 스스로 고립되기를 권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헤게모니적 팽창주의나 상호 배움의 과정이 없는 유교 가르침의 일방적인 포교를 지지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두 가지 유혹들을 모두 피해 감으로써, 이 성명서는 곡부의 성인과 그의 후계자들이 인도하는 정신에 충실하였던 것입니다. 만약 유교적 존재론이나 유교적 형이상학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엄격한 자기 정체성이나 거만한 교리주의의 존재론이 아니고 세상 만물, 세상 모든 사람들과의 가까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배움의 형이상학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중국 문화의 핵심적 특징으로써 ‘관계주의’(relationism; 상대주의와 절대주의 양쪽 모두에서부터 똑같이 멀리 벗어난)란 주제를 정확히 지적한 짜오 팅양Zhao Tingyang (趙汀陽, 조정양)의 통찰력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중국 철학은 관계의 문제에 너무나 깊이 몰두하고 있기에, 유학의 형이상학이나 혹은 공존의 존재론은 관계주의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아self는―『논어』(Analects)에서 알 수 있듯이―고립된 원자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신용의 공동체fiduciary community” 안에서 세상을 끌어안는 ‘관계적 자아’ 혹은 ‘관계의 축’이라고 말할 때, 그는 유교 철학자 뚜웨이밍Du Weiming(杜維明, 두유명)과 견해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교 사상에서 관계가 중심이라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 아닙니다. 사실 유교 가르침의 핵심은 종종 오륜五倫으로 요약되곤 합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혹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 연장자와 젊은이의 관계, 왕과 신하의 관계, 그리고 친구 사이의 관계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관계들이 단지 경험적-사회적 배열이 아니라, 분명한 의무와 책임을 담고 있는 윤리적 유대라는 사실입니다. 분명, 이런 유대 관계가 딱히 중국만의 것이거나 정해진 어느 역사나 지리적 배경에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유교에서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이런 윤리적 유대가 추상적 규범으로써 상하上下의 방식으로 명시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전후관계의 만남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유추적 이행을 통해서 (논리적 추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반화될 수 있습니다. 또한 위에 언급된 관계들 전부가 친밀한 가족 관계의 맥락에만 묶여있지 않습니다. 그 관계들 중 일부는 좀 더 폭넓은, 그리고 잠재적으로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왕과 신하의 관계와 친구들의 관계―문화적 이행에 거의 아무런 장애도 없는―가 특히 그러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명심해야 할 것은, 유교의 가르침이 단지 오륜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가르침을 떠받치고 있는 기본적 윤리 정신은 오륜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 윤리 정신은 인仁에서부터, 예禮, 의義, 그리고 지知에 이르는 일련의 중요한 덕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으뜸가는 덕목으로는 대개 ‘인’을 꼽습니다. 저명한 중국철학 역사가인 윙치찬陳榮捷의 말에 따르면, 인은 “기본을 이루는 보편적인 덕목이며 모든 덕의 근원이 되는 일반적 미덕으로 봐야만” 합니다. 이 덕목의 탁월성은 황금률과 맞먹습니다. 『논어』에서 말하기를 “자신이 서고 싶으면 남을 먼저 세워주고 자신이 이루고 싶으면 남을 먼저 이루게 한다. 나와 나 가까이 있는 것을 알고 이해함으로써 그에 유추하여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 인의 시작이며 인을 실현하는 올바른 방향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뚜웨이밍이 강조하고 있듯이, 인은 단순히 추상적인 금언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관계들 속에서 작동하는 작용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변화무쌍하며, 어느 일부분은 특정한 관습이나 의식, 의례에 의해서 형성되기도 합니다. 뚜웨이밍이 ‘인’을 “살아있는 은유living metaphor”라고 부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도덕적이고 올바른 인간적 삶의 방식을 위한 은유라는 뜻입니다. 인의 실천은, “공동으로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상징적 교환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여 말합니다.

‘인’이라는 덕목이 뜻하는 바는 타인에 활짝 마음을 개방한다(기꺼이 남을 세워주고자 함)는 것으로, 자기 고립이나 편협한 자기 정체성의 찬양과는 상반되는 것입니다. 세계화가 사정없이 진행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이런 개방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만 합니다. 단지 서구 근대뿐만 아니라 인도 문화나 이슬람 문화, 라틴 아메리카와 동아시아의 문화에 대해서까지 말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는 적극적인 참여 활동과 새로운 경험에 부단히 적응하려는 노력뿐만이 아니라, 유교 전통의 더 깊은 함양과 더불어 날로 심오해지는 자기이해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증법적이고 대화적인 이 과정을 뚜웨이밍 만큼 잘 기술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신유가가 걷고 있는 두 갈래 궤도에 대한 그의 숙고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지적하고 있듯이, 오늘날 유교 사상과 실천은 두 가지 차원의 과정으로 파악되어야만 합니다. 바로 “자기 주체성(혹은 자기 인식)의 부단한 심화와 자신에 대한 감성sensitivity(혹은 감수성sensibility)의 끊임없는 확장”입니다. 이 과정의 두 가지 측면은 긴밀하게 얽혀있거나 상호의존적입니다. 완전한 자기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 유교적 자아는 배움의 의지를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탈중심화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수용력과 환대의 범위를, 날로 넓어져 가고 있는 세계의 지평으로까지 확대하는 동시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없애고자 노력해야만 합니다. 뚜웨이밍에게 있어서, 이런 과정은 또한 “맥락화와 탈맥락화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a dynamic interplay between contextualization and decontextualization” 혹은 배움의 경험의 매 단계에서 작동하는 “구조적 제한과 절차적 자유의 변증법a dialectic of structural limitation and procedural freedom”으로 기술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논평이 『논어』의 첫 줄과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공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배우고 때때로 다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